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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직서를 썼던 인물은 베이징 대학 교장?

베이징 대학 출처=바이두

베이징대학, 
중국의 자부심이다. 1898년 정부가 세운 첫 근대식 고등교육 기관이다.
본래 이름은 '경사 대학당'京师大学堂, 1912년 5월 3일 지금의 베이징 대학으로 개명한다. 

中国近代以来唯一以国家最高学府身份创立的学校
중국 근대이래 유일한 국가 최고 학부 신분으로 창립한 학교
近代以来中国高等教育的奠基者
근대이래 중국 고등교육의 창시자

모두 바이두가 베이징 대학을 소개하면 보낸 찬사다.
문과, 이과 등의 강좌를 중국에서 처음 연 곳이 베이징 대학이니, 크게 틀린 말도 아니다.
자유주의 학풍이 강해 중국의 신사상 운동, 5·4운동 등이 모두 베이징대에서 발원됐다. 

차이위안페이 초상 출처=바이두

이 베이징대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차이위안페이蔡元培1868~1940다.
차이위안페이는 1916~1927년간 베이징 대학의 두 번째 교장이었다.
그는 독특한 자유주의 학풍으로 베이징대학은 명실공히 중국 최고의 대학으로 만든다.
근대 중국의 고등교육을 위한 첫 법령인 '대학령'을 만든 인물이다. 

수차례 독일과 프랑스에 유학을 해 학문을 닦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철학, 문학, 미학, 심리학과 문화사 등이
차이위안페이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던 학문 분야다. 
한마디로 중국 근대교육의 선구자, 바로 차이위안페이다.

그런 그가 또 다른 경력으로 유명하다는 것은 중국인도 잘 모른다.
그는 역대 베이징대학 교장 가운데 가장 많이 사직서를 쓴 인물이라는 것이다.

차이위안페이가 베이징대학교 교장 사직서를 낸 것은 
1917년 7월 3일의 일이다.
이어 1918년 5월 21일 두 번째 사표를 쓴다.
세 번째는 1919년 5월 8일이다.
이어 1919년 12월 31일 네 번째 사직서를 쓴다.
다섯 번째는 1922년 10월 19일이다.
그래도 처음부터 네 번째까지는 거의 1년도 채 못돼 사표를 썼지만,
다섯 번째 사직서는 그래도 2년은 버틴 뒤 썼다.

그리고 이 게 끝이 아니다.
여섯 번째 사직서는 1923년 1월 17일 쓴다.
이어 일곱 번째 사직서가 그의 마지막 사직서로 1926년 7월 8일이다.

일곱 번의 사직서를 던진 차이위안페이,
그가 얼마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 중국 교육을 위해 일했는지 잘 보여준다.

사실 1919년 5월 8일 사직서는 정말 유명하다.
1919년 5월 4일은 중국에 5·4운동이 벌어진 날이다. 

5·4운동은 베이징 대학 학생들이 주도해 벌인 친일 군벌에 대항한 민중 운동이다.

당일 시위를 벌이던 학생 30여 명이 군벌에게 붙잡혀 감금되자, 
차이위안페이 등 베이징 시내 각 학교 교장들이 나섰다. 모두 힘을 합쳐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 덕에 사흘 뒤인 7일 오전 10시쯤 학생들은 무사히 풀려났다.

학생들이 풀려나자, 차이위안페이는 9일 신문 공고를 통해 사직서 제출 사실을 알린다. 

베이징대학 교장 사직서를 이미 제출했다.
5월 9일 이후로 어떤 학교, 집단과도 관계가 없음을 밝힌다.

학생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스스로도 물러난 것이다.

요즘의 베이징대학은 어떤가?
차이위안페이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