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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여성 평하길 가구 평하듯 했던 중국 왕조는?

문화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에티켓’이 중요하다. 
사람 많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래로 사람과 사람이 사귐에 있어 ‘예절’이 중요했다.

근대 들어 전통에 대한 반발로 고대 복잡했던 예절이 그 맥이 끊어지기도 했지만, 
요즘 다시 문화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예절이 부활하고 있다. 
어떤 경우 전통에 따르고 어떤 경우 서양에서 수입된 문물에 따르지만, 
그 절차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게 사실이다. 

 

 

 

 

 

 

 

 

 

 

 

 

© kevin_lee, 출처 Unsplash 

본래 예절의 기본은 서로 불편하지 않기 위해 있는 것이다. 
처음 본 사람 간에 어떻게 인사를 하고, 
주인과 손님은 자리에 어떻게 앉고 하는 것 등을 정해 놓아 
서로가 의도하지 않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사실 예의의 기본만 본다면 예의를 지키는 것은 대단히 쉽다.
'서로가 불편하지 않고 불쾌하지 않는다'라는 전제만 충족된다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게 예의다. 
그래서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서 예의가 없으면 “예의도 못 지킨다."라고 비난을 하고, 
불편과 불쾌하지 않으면서 예의가 없으면 “탈속했다”, “예의에 구속되지 않는다"라고 칭찬을 하는 것이다.

중국 역대 왕조에서 가장 예의가 없었던 때를 꼽는다면, 
많은 역사 학자들이 ‘진’晋을 꼽는다.
진은 265년에 진왕(晉王) 사마염(司馬炎, 236~290, 시호(諡號)는 무황제(武皇帝))이 세운 나라다. 
낙양(洛陽)에 도읍을 두었다. 
280년에는 동오(東吳)를 멸망시키고 삼국(三國)을 통일했다. 
그러나 37년 후인 316년에 한국(漢國, 전조(前趙))에 의해 멸망한다. 

 

 

 

 

 

 

 

 

 

 

 

 

 

 

 

 

 

 

 

 

 

 

진무황 사마염 초상 출처=바이두 

  당대 도인으로 유명한 인물이 갈홍葛洪(284~363)이다. 
갈홍은 이런 예의 없는 진나라 풍속을 아주 싫어했다. 
기록을 남겨 당대 사람들의 저속함을 비난했다. 
그 기록에 따르면 진나라 사람은 아는 사이이면, 남의 집을 마치 자신의 집 드나들 듯했다. 
서로 욕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 xx 어디 갔어?” 객이 물으면, 주인은 “개 xx가 왔구나.” 답하는 식이었다.
이런 저속함을 싫어했던 갈홍은 그래서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갈홍에 따르면 진나라 귀족들은 서로 만나면 바로 술판을 벌였다. 
술판이 벌어지면 대놓고 신을 벗어 발을 씻는가 하면 오줌을 누기도 했다. 그 앞에 여자가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여성들이 머무는 내실에 들어가 둘러 보고, 여성 면전에 몸매와 미모를 칭찬하기도 했다. 
갈홍은 마치 집안의 인테리어나 가구 평을 하듯 여성들을 평했다고 했다.
그러니 이 시기 남녀 간 사단이 벌어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의 한국 같으면 '탄핵' 감이다.
 
사실 진무왕은 그 스스로가 호색한으로 유명하다.
삼국지 사마의의 손자로, 요즘으로 치면 소위 '금수저' 중의 금수저다.
오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한 뒤 각종 제도를 정비해 경제를 부흥시켰으나, 
바로 5000명의 처녀를 궁녀로 뽑아 주색에 빠진다.

황제가 그 모양이니, 군신들이야 오죽했으랴.
  오히려 갈홍에 대해서 ‘고루하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여기서 고루하다는 표현은 ‘古板’ gǔbǎn이다.  

중국 드라마의 한 장면 출처=바이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