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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꿀 뻔한 이혼 합의서

역사는 수많은 우연이란 물방울이 모여 만든 필연의 강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하는 작은 사건들이 모여
정말 그럴 수밖에는 없는 '역사'라는 시간의 강을 만든다.

그래서 역사는 헤쳐보면 볼수록 놀라운 일로 가득하다. 

아 이 순간, 이 작은 사건이 없었다면?

하고 감탄하게 된다. 

 

 

 

 

 

 

 

 

 

 

 

 

© ronymichaud, 출처 Pixabay 

중국 근대사에도 이런 역사를 바꿀 뻔한 아주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사건은 장제스蒋介石 1887.10.13. ~ 1975.4.5. 와 관련된 일이다.

장제스는 중국 현대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다.
쑨원을 이어 국민당을 장악해 한때 중국 천하를 통일했다. 친미적 성향으로 미국 등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일본의 침략이 없었고, 중국 공산당의 끈질긴 투쟁이 없었으면,
지금 중국은 장제스의 천하가 됐을 것이다. 

                                            장제스 초상 출처=바이두

그런데 역사를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장제스는 천하를 얻기 위해 수많은 안배를 한다.
그중에서도 
쑹메이링宋美龄과 결혼은 장제스가 한 안배 가운데 가장 절묘하다고 꼽는다.

쑹메이링은 당시 최고의 여인이었다.
중국 최고 갑부의 막내딸이었다.
그의 언니 쑹칭링宋庆龄은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孙文의 아내다.
훗날 대륙에 남아 여성으로서는 최고위직을 지냈다.

쑹메이링은 당대 최고의 영어 실력을 지녔고,
외교력도 뛰어났다. 

                                          젊은 시절 쑹메이링 출처=바이두

시안西安사변을 일으켜 "일본과 싸우라"라고 장제스를 협박했던 장쉐량张学良과 상하이上海에서 '8일간의 연애'와
평생의 정을 나눴다는 설도 있다.
이제 작은 우연에 대한 이야기다. 

장제스는 1927년 쑹메이링과 결혼을 한다.
장제스는 미모와 지성, 재력을 겸비한 22살의 처녀에 한눈에 반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하지만, 장제스는 과감했다. 아내와 협의해 이혼을 한다.
혹자는 장제스가 아내를 버렸다고 하는데, 꼭 그렇다고 하기는 그렇다.
중국 봉건주의적 사고가 남아있던 당시로 보면, 정실 자리를 바꿨다고 보는 게 더 옳아 보인다.
장제스는 이혼하고도 전처를 자주 찾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장제스는 쑹메이링과 결혼으로 정말 얻은 게 많다.
당시 장제스는 군벌 격파 전쟁을 벌이여 중국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쑹메이링의 집안은 당대 최고의 부자였고,
쑹메이링 자체가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최고의 외교 재원이었다.
1930년 중원 대전에서 승리한 장제스는 미국 등 각국과 외교활동을 벌이는 데 쑹메이링이 큰 역할을 한다. 

 

 

 

 

 

 

 

 

 

 

 

 

 

 

 

 

 

                           미 헐리우드에서 쑹메이링 환영회 모습 출처=바이두

그런데 이런 장제스와 쑹메이링의 결혼은 자치 무산될 수 있었다.
1927년 어느 날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宁波시의 펑화奉化라는 작은 현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두가 퇴근한 저녁 현장 쉬즈구이徐之圭가 굳은 표정으로 책상에 앉아 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동창인 장밍하오张铭镐가 들어왔다. 

"아니 무슨 고민이 그리 깊은가?"
동창 장의 질문에 현장 쉬가 답했다.
"아 고민이 아니라, 내가 오늘 무슨 복이 있는지, 역사적인 문서에 서명을 앞두고 있다네."
"그게 무슨 서류인가? 이 작은 현에서 역사적인 일이라니?"
"장제스의 합의이혼 서라네. 여기에 내가 서명을 해야 한다네. 역사에 한 귀퉁이에 내 이름이 남는 순간이지."
그러자 친구 장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보게 친구, 정말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으면,
이혼서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게.
그럼 역사의 한 귀퉁이가 아니라 교과서에 네 이름이 오를 것이야.!

이 이야기는 중국 런민르바오人民日报 산하 '원스찬카오'文史参考(2012년 4월 12월)에서 읽었다.
쉬즈구이 현장은 감히 장제스 합의 이론서를 반려하지 못했다.
결국 이렇게 역사의 한 토막으로만 기록됐다. 

 

 

 

 

 

 

 

 

 

 

 

 

 

 

 

 

 

 

 

 

 

 

 

 

 

 

 

 

 

                                                © erdaest,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