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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하나의 답이 열 답을 이긴다.

사람을 평가하는 ‘시험’, 이게 참 거시기 하다.

누구는 실력이 있지만, 
시험에서 충분히 실력 발휘가 안되고,
누구는 시험만 준비해 
실력을 좀 떨어져도  점수가 잘 나온다.
이게 둘 사이 차이가 적으면 문제가 없는데,
둘의 차이가 크면 문제 역시 크다. 

 

 

 

 

 

 

 

 

 

 

 

 

© dylandgillis, 출처 Unsplash

다시 말하지만, 
시험, 참 이게 쉽지 않다.
평하는 사람은 잘 뽑고 싶고, 
치는 이는 좋은 점수를 얻고 싶지만 
그래서 참 쉽지 않다.
60점을 기준으로 59점은 
반드시 떨어져야 하는 게 시험이기 때문이다.
어찌 1점이 실력 차이를 가를까?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1점의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험에 참가하는 사람은 
죽어라 합격 안정권의 점수에 들려고 노력을 한다.
그러다 보니 
평가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변별력을 위해 굳이 몰라도 될 것을 묻는다.
그래서 나온 게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일수록 기본에 약하다’는 
시험의 모순이다.

 

 

 

 

 

 

 

 

 

 

 

 

© rockthechaos, 출처 Unsplash

 본디 80점 이상이면 다 되는 것을 
굳이 90점 이상 받으려 생기는 모순이다.

80점 정도 받는 문제들은 모두가 
꼭 알아야 하는 문제들이다.
그 문제들의 답들은 그냥 아는 정도가 
몸으로 베어나 절로 실행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소위 중국식의 ‘체득’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학습의 최고 경지를 ‘체득’이라고 한다. 
머리로 아는 아니라 몸으로 아는 경지다. 
생각하고 반응하는 게 아니라 몸이 절로 반응하는 경지다.

아쉽게도
모두 알아야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아느냐, 
체득을 했느냐 하는 것은 
현대 시험에서 중시되지 않는다.

그저 중요한 게 
시험을 보는 순간 얼마만큼 아느냐만 중시된다. 
그래서 모두가 아는 것을 체득하려 하지 않고, 
굳이 몰라도 되는 것까지 공부를 한다.
아니 공부가 아니라, 시험에 대비하게 된다. 그리고 시험을 보고 그 답을 잊는다.
  
무슨 선승의 경지도 아니고, 
시험을 치르고 답을 잊다니….
  
그래도 가끔은 동양에는 ‘체득’을 중시하는 이들이 있어 
역사에 한 조각 이야기로 남는다. 

첸무 초상 출처=바이두

소개할 이야기는 첸 무钱穆(1895年7月30日—1990年8月30日)의 일화다.
첸무는 중국 현대 유명한 역사학자다. 유학자, 사상가, 교육가이기도 하다.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나 
베이징대의 전신인 연경대 국학 교수, 
훗날 중앙연구원 원사, 고궁박물원 특별 초빙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중국 역사 정신’, ‘중국 문화 총담’, ‘중국사상사’, ‘중국 근 삼백 년 학술사’ 등의 
풍부한 저술을 남겨 중국 학술계의 
‘일대종사’로 존경을 받았다.
  
그의 중학교 시절 이야기다. 
한 번은 시험을 봤다. 문제는 총 4개, 한 문제당 25점이었다. 
시험지를 받고 한번 쓰윽 훑어보는 데 세 번째 문제가 어린 첸무의 이목을 끌었다.

“백두산(자료에서 명칭은 장백산)의 지형과 군사 상황에 대해 논하시오.”

이 문제는 첸무가 평소 즐겨 읽었던 책들과 관련된 것이었다. 
어린 첸무가 체득한 지식이 자연스럽게 넘쳐나왔다. 
첸무는 신나게 아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런데 아뿔싸.
아는 것을 다 적었을 땐 이미 다른 문제를 풀 시간이 없었다. 
첸무는 어쩔 수 없이 답안지를 내고 나왔다. 
평소 그 답지 않게 풀이 죽어 시간을 보낼 때 성적표를 받게 된다. 

그런데,
성적표를 받아 든 첸무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의 성적은 75점. 
평가자는 첸무가 푼 답에 주목을 했다. 
중학생의 수준을 넘어선 답안은 그 하나만으로 충분히 첸무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머지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면 만점을 충분히 받을 실력이라 인정을 한 것이다. 

 

 

 

 

 

 

 

 

 

 

 

 

© Free-Photos, 출처 Pixabay

첸무는 그렇게 낙방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일화를 읽고 여운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만약 중학생 첸무가 낙방을 했다면 ,
만약 요즘의 한국에서 중학생 첸무가 시험을 봤다면,
훗날 학술계의 ‘일대종사’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우리 사회 이 순간,
얼마나 많은 우리 학술계의 '일대종사'들이 꿈을 잃고 있지는 않을까?

 

 

 

 

 

 

 

 

 

 

© rawpixel,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