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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만이 세상을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경詩經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이다.
주나라 때 노래를 모은 것이다.

 

시경

 

다음은 네이버 두산백과의 설명이다.

황허강[黃河] 중류 중위안[中原] 지방의 시로서, 
시대적으로는 주초(周初)부터 춘추(春秋) 초기까지의 것 305편을 수록하고 있다. 
본디 3,000여 편이었던 것을 공자가 311편으로 간추려 정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전하는 것은 305편이다. 
시경은 풍(風),아(雅), 송(頌) 셋으로 크게 분류되고 
다시 아(雅)가 대아(大雅), 소아(小雅)로 나뉘어 전해진다. 
풍(國風이라고도 함) 은 여러 나라의 민요로 주로 남녀 간의 정과 이별을 다룬 내용이 많다. 
아(雅)는 공식 연회에서 쓰는 의식과(儀式歌)이며, 
송은 종묘의 제사에서 쓰는 악시(樂詩)이다.

 

주나라는 BC 1046~BC771년에 존재한 나라다.
하夏, 상商 등과 더불어 삼대라 칭한다.
시경은 주나라 정부가 지역 곳곳의 시를 모아 편집한 책이다. 

 

 

 

 

 

 

 

 

 

 

 

 

 

 

 

 

 

 

 

© rawpixel, 출처 Unsplash

어떻게, 왜 모았을까?
주 정부에서는 때가 되면 관원을 각 지역에 파악해 지역의 민요를 수집하도록 했다.
이런 관원을 시를 모으는 관료, 채시관采詩官이라 했다.
소위 문관으로 가장 오래된 관직인 셈이다.

이 채시관들은 소위 방랑 시인들이었다.
황명을 받들어,
 각 지역에 들어가 시를 수집하고 
다른 시를 지역에 전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방랑 시인 채시관들은 가는 곳마다 
크게 성대히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들의 노래를 듣고, 새로운 노래를 전해주니, 어찌 환영을 받지 않을까?
그런데 왜 시였을까?

당시 시는 주로 민간에 구전되는 노래 가사였다.
요즘도 그렇지만,
가끔 민중의 애닮은 곳을 짚어주는 시가 있다면,
급격히 인기를 끌며 퍼진다. 

 

 

 

 

 

 

 

 

 

 

 

 

 

 

 

 

 

© HCE70, 출처 Pixabay

 

요즘이야 페이스북도 있고, 트위터도 있고,
카카오톡도 있고,
유튜브도 있지만,
그 옛날 주나라에 어찌 그런 게 있으랴.
그저 내 마음과 같은 노래가 있다면,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심사를 달랠 뿐이다.
그러다 보니, 
가장 인기가 많은 노래는
가장 많은 민중이 공감하는 것인 셈이다.

그 노래가 풍요와 개인의 행복을 비는 것이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다는 것이요.
그 노래가 원망과 나라의 궁핍을 노래하는 것이라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나라에서는 각 지역 민요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당대 민요는 
민심을 노래하는 사설이요, 
그 노래를 채집하는 채시관은 
지역 민심을 중앙에 전하는 언론인이었던 셈이다.

노래로 모든 것을 다 전했던 시대.
또 그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궁궐 행사에 그 노래를 불렀던 시대.
정말 공자의 말처럼 가장 완성된 정치가 아닐까? 

 

 

 

 

 

 

 

 

 

 

 

 

 

 

 

 

 

 

 

 

 

 

 

 

 

 

 

 

 

 

 

 

 

 

 

 

 

© geran,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