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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상

공부(工夫)가 뭔지도 모르고 공부를 하니…

시간의 시(時)는 갑골문의 "해가 태어난다"라는 의미에서 사람의 손이 더해졌다. 햇볕을 받아 나무가 자란다는 것에 사람의 손, 즉 사람의 역할이 더해진 것이다. 해로 대표되는 하늘의 시간, 자라는 나무로 대표되는 땅의 시간에 사람의 손으로 대표되는 사람의 시간이 더해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들여 나무를 더욱 우거지게, 곡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땅의 시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공간의 하늘에서 시간의 하늘을 알고 나면 참 많은 것이 새로워진다. 영원한 하늘의 시간과 한계가 정해진 땅의 시간 차이 속에 새삼 스스로 한계가 더욱 명백해진다. 스스로 자연의 변화를 관조하게 되고, 홀로 있어도 겸허하게 된다. 세상은 멈춰진 듯, 빈 듯 보이지만 영원한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고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하늘의 시간, 땅의 시간 그리고 인간적 시간을 합친 게 '時'다.

 

바로 우리가 잊었던 시간의 하늘을 알고 나서 느끼는 변화다. 우리가 하늘 천(天) 자만큼 잘 모르고 사용하는 단어가 '공부'(工夫)다. 역시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공부는 명사로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 이란 뜻이라 설명하고 있다. 아쉽지만 꼭 맞는 설명이 아니다. 역시 어설프게 맞는 게 모르니만 못하는 수가 있다.

 

한자로 공부는 시간을 의미한다. 우리 사전의 뜻을 빌리면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데 들이는 시간이란 의미다. 우리 선조들도 공부를 시간의 개념으로 썼다. 특히 객관적인 시간에 대응하는 주간적인 시간, '인간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공부란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려 주는 일화가 있다. "10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란 말의 유래다. 역시 한자를 곁들인 설명이다. 일단 도로는 되돌리다는 '도루묵'에서 보듯 "되돌리다"라는 우리 말이 아니라 한자 도로(徒勞)라는 설명이 재미있다. 한자 도로의 뜻은 '헛 일'이라는 의미다. 


옛날 어떤 고을로 동냥(탁발)을 갔던 젊은 스님이 아리따운 처녀를 보고 그만 상사병에 걸렸다. 
처녀에게 구혼을 하자, 처녀는 엄청난 조건(?)을 걸고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 조건이란 게 10년 동안 한 방에 동거하되 손목도 잡지 말고 바라만 보고, 친구처럼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녀를 너무나 사랑했던 스님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둘의 동거가 시작됐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0년을 몇 시간 남겨 놓은 밤, 말 그대로 진정한 결혼을 앞둔 마지막 동거의 밤이 됐다. 

 

10년을 친구처럼 지내 온 사랑하는 여인의 옆에 누운 스님의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스쳐 갔다. 

 

'아 손 한 번만 잡았으면...'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제 정말 10년인데…'

 

하는 생각에 스님은 그만 처녀의 손을 잡고 말았다. 
그 순간 처녀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파랑새로 변하고 말았다. 
파랑새로 변한 처녀는 '어찌 몇 분을 참지 못하셨나요?' 슬프게 울더니 그만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젊은 스님이 10년 시간 참고 참았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게 10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에 얽힌 일화다. 

 

10년 공부는 스님이 공들이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10년 공부는 스님이 참고 노력했던 시간을 의미한다. 다만 일화 속에서 스님이 혼자 노력했던 시간 10년과 객관적 10년이 일치하면서 많은 이들이 그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처녀가 스님에서 잠자리 6시간씩만 10년간 참으라고 조건을 내걸었다면 공부의 개념이 명확 해진다. 스님이 들인 노력의 시간은 1년 365일, 6시간씩이면 총 2190시간이다. 10년이면 총 2만 1900시간이 된다. 스님이 쓴 공부는 2만 시간이 좀 넘는다. 2만 시간이 스님이 사랑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쓴 시간, 즉 공부다.

 

한때 유행했던 것으로 '1만 시간 법칙'이라는 게 있다. 어떤 평범한 사람이라도 무슨 일이든 1만 시간을 쏟아 노력한다면 모종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스님 일화 사례에서 보았듯 1만 시간은 하루 3시간 정도 투자를 10년간 했을 때 드는 공부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든 하루 3시간씩 공부를 10년간 쉼 없이 한다면 성과가 있다는 의미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쉽게 말해 하루 3시간씩 들인 '10년 공부'인 것이다. 공부는 이렇게 무엇을 얻기 위해 들인 노력의 시간이다. 노력의 시간은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 다르다. 누구는 책 한 권을 독파하는 데 10시간이면 되지만 누구는 같은 책을 독파하는 데 100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결실이다. 공부를 쏟으면 한가지 결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나무의 재질을 보고 깎는다"했다. 

 

 

공부는 한가지 성과, 결실을 얻기 위해 쏟는 시간을 말한다. 한 사람이 한 가지 결실을 위해 1년 공부를 들였고 다른 한 사람이 10년 공부를 들였다고 해도 그 결실은 다를 것이 없다. 세상을 사는 데 필요한 큰 결실은 한 가지면 족하기 때문이다.

 

 

역사 속 위인들을 보라. 모두 한가지 큰 결실로 이름을 남겼다. 물론 다재다능해 다양한 분야에 결실을 남긴 이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역사가 기억해 주는 결실은 오직 하나다. 그 결실을 10년에 하나 얻나, 1년에 1하나 얻나 모두 인생에 하나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개인적으로 10년에 하나 얻는 게 더 낫다고 본다. 빨리 얻어 봐야 빨리 닳을 뿐이다. 주식투자에서 3일 20% 수익률을 낸 뒤 나머지 27일 0% 수익률을 냈다면 30일, 한 달 간 평균 수익률은 20%에 불과하다. 날이 지날수록 수익률은 떨어지는 것이다.

 

 

인생의 수익률 법칙은 주식 수익률보다 더 단순하다. 한때 고시 천재들이 있었다. 남들 하나도 붙기 어렵다는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의 어려운 자격증을 두루 따는 이들이 있었다. 지나고 보면 대부분이 세상이 이름을 내기는 했지만 각 분야에서 실제 두각을 나타내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한 가지 자격증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잘난 척에 봐야 사람들 속에 사람이었을 뿐이다. 도토리 키 재기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 60년, 요즘 늘어나 80년 생애에 10년 공부 한 번 들여 성과를 보면 나름 성공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잘 하면 평범한 인생은 다름의 성과를 봤다고 할 것이다. 성과를 일궜다고 끝이 아니다. 그것을 다시 활용해 즐기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80 평생은 한 가지 성과를 이루고 관리하기도 짧다. 

 

 

一生一果, 足也

한 평생, 한가지 성과 면 만족할 따름이다.
공부란 이렇게 인간의 시간이다. 땅의 시간이다. 하늘의 시간이 모두에게 고루 적용되는 시간이라면 그 변화에 맞춰 이 땅이, 인간이 호응하는 변화가 공부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것은 한 가지 성과를 내기 위해 공들이기를 중단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늘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고르게 항상 결정된 그대로 따른다. 

 

하늘의 시간과 달리 인간의 시간, 공부는 다르다. 다만 다르다는 게 의미가 있고 없고는 모두 개인하기에 달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