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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전인대 투쟁의 승리 - 저우언라이 24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중국 공산당 당사에서 제 4기 전국인민대표자대회(이하 전인대)는 

문화혁명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중국 정부의 제4기 전인대 설명

이 회의에서 장칭을 수뇌하는 ‘사인방’과 

저우언라이, 이센녠, 예젠잉 등 원로들 간의 

노선 싸움이 벌어져 물밑에서 중국 정가를 뒤흔들었다. 

총성없는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펑칭룬 사건은 이 정쟁의 핵심이었다. 

사인방은 이 사건을 무기로 다시 한 번 문화대혁명의 기조를 높이려 하였고, 

저우언라이 등은 어떻게든 이 사건을 무마시키려 했다. 

 

역시 당대 이들 중국 공산당 간부의 생사여탈권은 마오쩌둥의 손에 있었다.

황훙원이 마오쩌둥을 찾아 펑칭룬 사건과 함께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이 

4기 전인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고 일러바쳤다. 

한참을 말없이 듣던 마오쩌둥이 입을 열었다.

 

 

 

“이견이 있으면 저우언라이 앞에서 바로 이야기를 해야지. 

지금처럼 이런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옳지 않아. 

돌아가면 덩샤오핑 동지와 저우언라이 동지 등과 

더 많은 교류를 하도록 해야 해. 

장칭은 좀 멀리하도록 하고. 

신중하게 행동하게나.”

 

다시 한 번 문화대혁명의 분위기가 연출되기를 기대했던 왕훙원의 안색도 변했다.

사실 베이징의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도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침 외교사무를 담당하던 덩샤오핑은 외빈과 함께 창사의 마오쩌둥을 만나야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덩샤오핑은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서 장칭 등이 제기하는 펑칭룬 사건에 대한 해명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장칭은 더욱 당황했다. 

왕훙원을 창사에 보냈지만 그 결과에 자신이 없었던 터였다. 

장칭은 먼저 덩샤오핑과 함께  창사의 마오쩌둥을 보러 가는  왕하이룽(왕해용)과 당원승(당문승)을 따로 면담을 했다. 

장칭은 둘에게 덩샤오핑의 문제를 마오쩌둥에게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제 4기 전인대에서 덩샤오핑이 참석 웃고 있다. 출처= 바이두

1974년 10월 20일 덩샤오핑이 외빈과 함께 창사의 마오쩌둥을 찾았다. 

외빈과 마오쩌둥의 면담이 끝나고 왕하이룽과 탕원승 등이 마오쩌둥을 만나 베이징의 일을 보고했다. 

장칭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 내용의 보고였다.

“저우언라이 총리도 장칭 등이 문제 삼는 것이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탕원승 등의 보고가 끝나자,  마오쩌둥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펑칭룬 사건은 별 것도 아냐. 특히 센녠 동지가 이미 해결한 문제야.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해. 

앞으로 4기 전인대 인선문제는 저우 총리와 왕훙원이 알아서 하도록 하게 해. 

사인방은 더 이상 장칭 뒤 숨어 남을 욕해선 안돼.”

여기까지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잠시 뒤 입을 연 마오쩌둥의 말은 왕하이룽 등 뿐 아니라 중국 전국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4기 전인대에 대한 내 건의사항은 다음과 같네. 

덩샤오핑 동지는 당중앙 부주석, 제일부총리,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겸 총참모장으로 추천하네.”

당중앙 부주석, 중앙군사위 부주석겸 총참모장. 장칭 등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이렇게 덩샤오핑은 다시 중국 공산당 권력의 중점에 서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