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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he One

한국 사회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병철은 협상의 달인이었다. 그는 협상을 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어냈다. 한국 정부는 물론 일본, 독일 등 외국 정부의 지원도 이병철은 협상을 통해 이끌어냈다.

사실 한국에서는 ‘고 이병철 회장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를 놓고 단순히 “정경유착을 통해서”라고 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큰 오해다. 무엇보다 정경유착 부분만 봐도 각 시대마다 이병철 보다 더 정권에, 권력에 유착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현재의 삼성보다 성공하지 못했다. 사실 정경유착이라는 게 그렇다. 한국같은 민주 사회에서 10년 이상을 가는 권력은 없다. 이승만, 박정희가 장기 집권을 했지만 어느 누구도 50년을 넘지는 못했다.

그러니 정경유착은 반드시 말로가 비참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전 정권과 유착을 했던 이들이 새로 정권을 잡은 이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병철은 시대를 넘어 매 정권마다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승만 정권은 결국 당대 이 땅에 있던 은행 5곳의 지분을 이병철의 삼성에 넘겼다. 이어 4.19 혁명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려 탄압을 받았지만, 이병철은 당당했다.

당시 하늘의 새도 떨어뜨린다는 검찰에 출두해 이병철은 “도저히 내지 못할 세율을 법으로 정해놓고 내지 못한다고 기업을 탄압하면 누가 기업을 할 것인가?, 이 땅에 기업이 사라지면 누가 이 땅을 부유하게 할 것인가?”라고 당당히 주장을 했다.

5.16 군사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와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부정축재자로 몰린 뒤 그 딱지가 계속 됐지만, 때론 정권과 협조하며 때론 정권과 각을 세우며 정권이 정말로 나라 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만들어 내도록 유도했다.

이병철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울산비료공장의 차관도입을 위해 일본정부와 기업들과 동시에 밀고 당기는 협상과정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처음부터 이병철은 일본의 재계를 동원해 일본 비료 산업계의 반발을 억누른다. 당시 일본은 아시아 제일의 비료 생산 공장들을 가지고 있었다. 최고 품질의 자랑했지만 그 공장 규모는 작았고, 생산 시설은 낙후돼 있었다.

한국은 그런 일본 비료 산업계의 주요 수출국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한국의 산업은 농업 의존도가 컸는데, 변변한 비료 공장 하나 없었던 상황이다.

일본 비료 산업계가 일본 정부가 차관까지 빌려주면서 한국의 세계 최대, 최첨단의 비료 공장건설을 지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공장 건설을 주도하는 이병철을 찾아 “항상 한국에 최저가의 최고 품질의 비료 공급을 약속할 것이니, 공장 건설을 중단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비료 산업계의 이런 반발은 일본 재계에서 무시됐다. 한국의 의지가 굳이 일본의 지원이 아니어도 공장을 짓겠다는 것인데, 일본 비료 산업계를 위해 한국 공장 건설 지원 요청을 저버리면, 공장 건설을 통한 막대한 이익도 다른 나라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일본 재계의 목소리였다.

결국 일본 정부의 차관 지원이 성사됐고, 일본 재계가 한국의 울산비료공장 건설을 하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장면은 바로 이 때 시작된다.

이병철은 일본 재계 당대 최고로 꼽히던 일본 미쓰이물산을 집행사로 선정하고 공장 건설 조건 협의에 들어간다. 이병철은 자서전에서 이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적고 있다. 미쓰이측 상담 최고 대표자, 실무자 이름은 물론, 첫 회합 장면부터 회담의 과정이 다른 때와 달리 상세히 묘사돼 있다.

“처음부터 일본 상사의 협상팀은 고압적이었다. 한국이 30만 톤이나 되는 큰 규모의 요소 비료 공장을 건설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 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며 농담부터 던지는 것이었다.”

첫 만남부터 이런 일본 협상팀과 이병철은 그래도 협상을 지속했다. 하지만 결국 이병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일이 벌어진다. 가격 상담을 벌이며 이병철이 “일본의 경우 플랜트 수출에서는 50%, 심지어 두 배에 가까운 이익을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비료 공장은 그럴 수 없다. 정당한 가격을 산출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미쓰이가 기계를 공급받을 때 부분별 최고 가격을 산정하고, 미쓰이 상사의 마진은 3%로 억제해주길 바란다”고 하자, 미쓰이 측이 “어불성설이다. 10% 마진은 보장해줘야 한다”라고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한 것이다. 이병철은 “심지어 일본 실무 담당자가 다리를 꼬고 천정만 봤다”고 했다.

이병철이 화를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하자” 이병철은 관련 사실을 미쓰이 본사에도 통보했다. 미쓰이측이 이번에 화들짝 놀랐다. 긴급히 당시 사장이 전화를 직접해 사과를 했다. 미쓰이측 실무진도 다시 이병철을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병철은 만나지 않았다. 6차례 가량 문을 두드리던 미쓰이측이 결국 손을 들었다.

이병철 본인이 밝힌 협상 방법의 비밀이었다. 서로가 합리적인 범위에서 나의 최대한의 이익을 보장하면서 상대방의 이익을 보장해주라. 그리고 그 것을 반드시 관철하라.